본문 바로가기
  • 향료와 관련된 모든 지식
Fragrance story

조향사가 말해주는 조향사가 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by 향료전문가 2023. 7. 5.

국내에서 현실적으로 조향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조건에 관해 말하자면 '화학과 졸업 예정인 영어 가능자'이다. 영어는 잘할수록 좋지만, 전공 서적을 천천히 해석하며 읽을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또,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회사와 가까이 사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 참고해두면 좋다. 

 

조향사가 꿈인 당신이 화학과라면 '이렇게 조건이 간단하다고?'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화학과가 아니라면 조금은 답답해지는 이야기로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해주고 싶은 얘기는 정말로 조향사가 되고 싶다면, 어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보다는 훨씬 쉽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조향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기 침체로 인해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회사가 줄었지만, 넘치고 넘치는 향이 들어가는 제품 수에 비하면 조향사의 수는 턱없이 모자라다. 아무리 저렴한 제품에 들어가 있는 싸구려 향이라고 해도 어설프지 않게, 불쾌하지 않게 향의 모양새를 잡을 수 있게 되는 데는 십 년도 짧은데,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고(그중에 하나인 사람) 회사는 오래 일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나는 못 했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조건을 가졌든 선천적으로 조향사가 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첫째는 후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감각기관의 발달 정도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시력이 좋고, 어떤 사람은 청력이 발달했다. 후각도 시력, 청력처럼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스펙트럼이 있다. 특히, Amber note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흔하다. Amber note를 느끼는 사람은 멀리 있어도 코가 아플 정도로 강하게 느끼지만 Amber note 취맹이 있는 사람은 눈을 가리면 코 근처에 향이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다. 미리 테스트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지만 그나마 일상 생활용품 중에 앰버냄새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제품은 가루 세탁 세제인 것 같다. 가루 세탁 세제를 맡았을 때 코가 맵고 아릴 정도로 강한 냄새를 느끼면 아마 앰버 노트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것이고 어쩐지 밍숭맹숭한 냄새가 난다면 선천적으로 못 맡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정확한 방법 아님).

 

두 번째는 호기심과 관찰력이 없는 사람이다. 향을 만드는 능력은 외국어로 글 쓰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어를 외우고, 장르에 맞는 내용을 일관적으로 써줘야 한다쓰다 보면 오타가 보이지 않아서 다 쓰고 난 다음에는 교정도 해줘야 한다. 호기심이 없으면 수많은 실험을 반복하면서도 어떤 상황에 어떤 원료를 사용하는지, 항상 짝꿍처럼 함께 사용되는 원료가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인과관계가 제대로 구성되어가고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려니 답답하기만 하고 재미없어 한다. 

 

위의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조향사가 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또 있다. 화학과를 졸업하지 않았다면 조향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할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다. 아마 화장품 회사에 입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어려움이 있을까? 입사 초에는 원료 이름에 적응하는 것부터 차이가 난다. 향료로 사용되는 물질의 이름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는 화학물질 이름과는 매우 다르고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Phenyl Ethyl Acetate, Phenyl Ethyl Alcohol, Ethyl Phenyl Acetate, Methyl Phenyl Acetate 모두 다 다른 물질이다.

 

이름이 길면 읽기조차 싫을 수도 있다. ex) Butyl phenyl methyl propional, Dimethyl benzyl carbinyl acetate.

 

입사해서 원료의 향을 암기하는 것도 벅찬데 이름까지 생소하다면 정말 벽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참고 일하다 보면 결국 적응한다. 보통 비전공자도 3개월이면 영어로 된 화학물질명 보는데 거부감이 사라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분석 기기와 관련된 업무를 맡길 수 없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분석 장비는 꽤 비싸다. GC/MS는 브랜드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1~2억정도 한다. 아마 화학 전공자가 아닌데도 누군가를 조향사로 채용했다면, 회사에서는 분석 업무를 가르칠 생각 없이 채용했을 것이다. 향료회사에서 하는 일이 꼭 분석 화학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업무 영역이 좁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향료 회사에는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종종 있다. 생각보다 화학 전공자들은 향료회사로 취업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력서를 받아보면 의외로 전공자가 아닌 경우도 많고, 사람이 당장 필요하면 면접을 보고 여러 조건이 맞으면 채용할 수 있다(인생은 타이밍). 또한 회사마다 다를 수 있지만 조향사 자격증을 필수로 여기지 않으니 비싼 돈을 들여 자격증을 딸 필요가 없다(진심으로, 정말로). 차라리 이력서에 공을 들이면 면접을 볼 확률이 높아지니, 이력서에 공을 들이면 좋을 것 같다. 이력서에서 가장 보고 싶은 내용은 면접자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를 보는 편이다. 꿈과 희망 같은 내용은 적당히 지루하지 않게 표현해주고 평소 어떤 제품들을 어떻게 관찰해왔는지 써주면 좋을 것 같다. 어떤 향이 팔리는지 아는 센스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트렌드가 변화하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느낀 경험이 있으면 적어줘도 좋다. 꾸준히 제품 향을 맡고 기록해온 노트가 있다면 첨부해도 좋다. 자격증에 비해 공들이는 시간은 길어도 효과는 몇 배는 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미리 갖출 수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