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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rance story

조향사가 말해주는 좋은 향을 고르는 방법 (조화로운 향이 무엇일까?)

by 향료전문가 2023. 8. 4.

세상에서 가장 조화로운 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자연에서 만들어진 모든 향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꽃 향기를 좋아하시나요? 과일에서 나는 향기는 어떠신가요? 자연은 진정으로 최고의 조향사이자 모든 조향사들의 영감이 되는 뮤즈입니다.


조향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저는 상당 기간동안 자연의 향에 대한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원료들의 역할과 짜임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실력이 부족했던 탓에 인공적으로 잘 만들어진 향들이 그저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당시에도 자연이 가진 향이 좋았지만, 언제나 너무 희미하게 느껴졌고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요. 그러다 언제쯤이었을까요. 향이 어떻게 쌓이고 구조를 갖추고 강도를 만들어가고 볼륨감을 주고 하는 것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할 무렵이 된 후 아무 생각없이 길에서 맡은 장미과 아카시아의 꽃 향기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하모니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노력을 해도 절대 이러한 완벽한 조화의 근처까지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할 수 없는 좌절감과 감동 그 어딘가에서 그냥 머리가 멈춰 버렸습니다. 만약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으시다면, 가장 유명한 장미 향수나 가장 아끼는 장미향 향수를 가지고 담장에 핀 장미와 함께 동시에 비교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분명 좋아하던 향수 냄새였는데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향기에 감동하게 되실 겁니다. 

 

향의 조화로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화롭지 않은 향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훨씬 빠를 것입니다. 자연의 조화로운 향기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완벽을 설명하는 것보다 불완전함을 설명함으로써 접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길을 가다가 드럭 스토어에 들려 시향지에 향수를 뿌려서 맡아보신 적 있으시죠? 잔향까지 체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처음 맡았을 때는 분명 멜론같은 달콤한 향이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완전히 다른 바닐라 향기만 남아버린 적 있으신가요? 향을 들고 걸으면서 맡을때마다 냄새가 시시각각 달라진다면 그 향은 100% 하모니가 좋지 못한 향입니다. 

 

사람들이 향수나 제품에서 향취를 확인할 때 흔하게 접하는 삼각형 그림을 보신 적 있으실겁니다. 탑 노트에는 머스크 멜론, 오렌지, 스피어민트 미들노트에는 오렌지꽃, 재스민, 라일락 베이스 노트에는 앰버, 머스크, 시더우드가 적혀있는 향이 있다면,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 향에서 시더우드와 앰버 향을 느끼려면 몇 시간 정도가 지나야할 것 같으신가요? 두 시간? 

 

 

정답은 [처음부터] 입니다. 하모니가 좋은 향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캐릭터를 유지합니다. 모든 향은 처음 맡을때부터 탑과 미들 베이스 노트가 한번에 올라옵니다. 다만 비율이 다소 달라지는 것인데요. 이해를 위해 숫자로 표현해보겠습니다. 하모니가 좋은 어떤 임의의 향이 있다고 가정해보고 탑-미들-베이스의 비율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직후: 40-40-20

10분후: 30-40-30

30분후: 20-50-30

2시간후: 10-50-40

3시간후: 10-40-50

4시간후: 5-45-55

다음날: 20-80

 

위의 비율이 좋은 하모니의 탑-미들-베이스 흐름의 예시인데요. 비율이 위와 같다면 직후부터 바텀노트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겠죠? 처음 향은 탑 노트가 가진 휘발성 때문에 미들노트와 바텀노트가 함께 끌어올려져 처음 느끼는 바텀노트는 상당히 강하고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음날 바텀 노트를 맡으면 탑이 거의 사라지고 없으며 미들노트도 끌어주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바텀노트가 전날과 같은 풍성한 느낌이 아닌 약간은 밋밋한 느낌으로 남게 됩니다.

 

자 그러면 하모니가 좋지 못한 향들을 살펴봅시다.

직후: 70-20-10

10분후: 50-40-10

30분후: 20-60-20

2시간후: 5-50-45

3시간후: 20-80

다음날: 100

 

이러한 현상은 탑과 미들노트를 제대로 엮지 못해서 일어나는데요. 조향사들은 탑노트가 미들노트와 바텀노트를 잘 끌고 올 수 있도록 향을 엮는 작업을 합니다. 미들이 너무 안올라오면, 해당 미들노트를 탑과 엮을 수 있는 원료를 사용해서 끌어올려준다고 해야할까요? 이런 작업 없다면 탑이 미들을 가리고 미들이 베이스를 가려 향이 풍성하지 못하고 단조롭고 유치해집니다. 이러한 향들은  딱히 시간을 오래 두고 볼 필요도 없이 처음 맡을때부터 탑 노트 비율이 너무 과도하게 많고 미들, 베이스가 탑과 엮이지 않은 채 사방팔방 흩어져서 갑작스레 올라옵니다. 향수의 경우 알코올 냄새가 그대로 노출되는 느낌도 있고요. 그렇게 첫 느낌에 별로인 향들은 영원히 다시 체크하지 않고 지나칩니다. 그래서 종종 지인들이 '너 oo브랜드의 ㅁㅁ향 알아?'라고 물어보면 솔직하게 '맡아본 적 있는데 별로여서 기억 안나.'라고 대답하는데요...유명한거라며 전문성을 의심당하지만ㅜ저는 정말로 굳이 의미없는 향은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하모니에서 중요한 것은 본능적인 감각도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울리는 주파수를 알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도-미-솔이 듣기 거북하지 않지만 도-파-시-레를 동시에 친다면 약간 귀에 거슬리게 들립니다. 후각도 비슷한데요. 딸기향과 바나나향이 어울릴 것 같냐고 물어보면 다들 생과일 주스를 먹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즈베리와 오이향은 어떠신가요? 본능적으로 이것들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향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향을 맡았는데 이게 조화로운가? 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더라도 맡자마자 내 머릿속에 물음표를 만드는 조화는 유니크하다고 포장하지 말고 웬만하면 피하십시오. 향이 독특하고 유니크하다는 말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조화로운 향일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향수라는 것은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지만, 하모니가 좋지 않은 향을 고르고 싶다면, 남들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고 쓰셔야합니다. 

 

 

이렇게 하모니가 좋은 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제품이나 향수를 고르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